세상의 입맛 홀릴 사과 한 알을 들고 왔다
세상의 입맛 홀릴 사과 한 알을 들고 왔다
  • 김수진
  • 승인 2018.09.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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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바람부리 고산사과농원 대표 민병표

 

강릉 바람부리마을에서 고산사과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민병표 대표는 신문을 전국으로 실어 나르던 운송업이 전문이었던 사람이다. 도시의 삶을 접고 산 속으로 들어가 누구 하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밭을 일궈 국내 최고의 사과 재배지를 만들어낸 뚝심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이제 고랭지 채소산지로만 알려진 강릉의 대체작물 주인공으로 사과를 선택하게 한 그이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펴보았다.

Q. 본인을 소개하자면

사과나무를 심고 사과를 키워내는 농부다. 이름은 민병표, 43년 생이다.

Q. 나면서부터 농부였나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운송업을 해온 사람이다. 뭔가를 목적지까지 나르는 일이다. 신문사에서 그런 일을 했다. 지금은 사과를 키우고 거둬서 찾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르는 일을 도맡아 한다. 따지고 보면 그 또한 운송업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Q. 사과를 키우기 전의 삶을 이야기 해달라

골재회사에서 6년 정도 일을 했다. 근무기간을 마치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고 찾던 중에 신문사의 배송업무를 맡아서 진행할 사람을 구한다기에 지원했고, 그것이 사회에서 월급쟁이로 일한 마지막 업종이 됐다. 물론 내 자신이 신문사와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염려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골재회사 공사현장의 업무라는 게 대부분 운송기사들을 다루는 일이니까, 신문 배송 역시 운송기사들을 통솔하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무척 닮았다.

Q. 아무리 비슷한 일이라고 해도 엄연히 차이는 있었을 텐데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내가 들어간 신문사가 막 창간을 준비하던 곳이었고, 발송을 맡는 부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조직해서 운영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되레 장애요소는 적었다. 특히 운송기사들을 다루는 노하우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 있었으니까 남들보다 유리했다고 본다.

Q. 신문 발송업무를 시작하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 발송 팀을 조직해서 업무를 시작하는 데에는 1달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떤 일이라도 다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신문 창간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신문 외적인 문제들이 꽤 많았다는 이야기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문제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때그때 잘 이겨냈다.

Q. ‘이겨냈다는 표현이 무색할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잘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일을 꾸려가는 스타일이라서 되레 외적인 압박이 심했다는 건 분명 사실이다. 그래도 워낙 강한 성격인지라 잘 이겨낸 게 다행이다. 지금 들어보면 좀 우스갯소리 같겠지만 89년 당시만 해도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 물론 혼자서 배워 익혔다. 덕분에 이때 배운 엑셀 프로그램으로 신문 발송 전체업무를 전산화하는 일을 완성했다. 그때는 모든 업무가 손으로 종이에 써서 이뤄지던 것을 컴퓨터로 일사천리 손쉽게 처리해 내니까 다들 깜짝 놀랐을 정도다. 신문사의 거의 모든 서류양식을 다 내 손으로 만들어 주었고 일부나마 자동화도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시간을 지키면서 남들과는 차별화된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지금 사과를 키우는 자세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Q. 사과와 발송업무의 유사성이라는 이야기인가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다. 내가 자리잡은 바람부리라는 곳의 환경이 아주 독특하다. 우선은 생장이 시작되는 봄이 다른 곳에 비해 한 달 정도 늦다. 반대로 열심히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은 다른 곳에 비해 한 달 정도 짧다. 즉 봄은 늦게 오고 가을은 빨리 온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남들보다 제대로 사과를 키우기 힘든 환경적인 약점을 지녔다는 것이고, 남들처럼 한다면 품질이 떨어지고 크기도 작은 사과를 키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제대로 시간을 맞춰서 농사를 지어야 하고, 보다 좋은 거름을 주어서 생장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남들처럼 일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나만의 특별한 경작방식을 지켜야 함을 뜻한다.

Q. 특별함의 대표적인 면모 하나쯤 소개해달라

우리 집에 개가 여러 마리 함께 산다. 종종 이 녀석들이 소똥을 먹는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사과나무에 주는 거름으로 우분을 쓰고 여기에 쌀겨와 클로렐라 미생물을 함께 섞어서 퇴비로 만들어 쓰는 데, 이것이 먹어도 될 만큼 깨끗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더욱이 사과나무 아래는 짚으로 덮어두는 데, 들춰보면 지렁이가 살 정도로 깨끗하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 비해 악조건이라고는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오염이 덜한 청정지역이기에 남들처럼 방제를 위해 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는 게 되레 좋은 사과를 키울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Q. 우문 한 가지 건네 보겠다. 사과가 말을 하는가

그럼 나는 현문우답을 해보려 한다. 사과도 분명 말을 한다. 사람처럼. 수십 년을 운송업만 해온 사람이 농사를, 그것도 사과나무를 키우려니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사과 관련 용어는 당연히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굳이 터를 잡은 곳이 일반적인 사과 밭과는 아주 달라서 어느 것 하나 적용 가능한 게 없었다. 다만 무엇이든 전문가에게 배우고 익히면 되겠지 하고 살면서 터득한 경험을 철저히 믿고 따랐다. 하나하나 배운 것을 현장에 적용시켰더니 언젠가부터 사과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과든 사람이든 그 근본적인 것은 다 똑같다는 것이었다.

Q. 사과가 뭐라고 하던가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이 사과도 종족번식을 위해 살아간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사과는 씨앗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대단히 불안해 하는 반응을 보인다. 즉 모든 것을 씨앗 보호에 집중하기 위해 당도를 열매에 온통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잖은가?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부모가 온 힘을 다해서 보호하려는 그런 본능 말이다. 그래서 사과가 달고 맛있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 참 오래 걸렸다.

Q. 사과와 사람이 닮은 점도 있던가

이게 참 재미있다. 요즘은 밀식재배라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일본의 학자가 제안해서 널리 퍼진 방식인데, 띄엄띄엄 심지 않고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형태로 나무를 심고 기른다. 이를 나리타 방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키운 사과나무는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삐죽하고 키도 크다. 4미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냥 손을 대지 않고 방치하는 식으로 키우면 둥글게 퍼진 형태가 된다. 키우는 방식에 따라 모양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과나무는 자기 자신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종족번식보다는 자기 몸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한다. 가지가 위로 향한다는 것은 제 몸이 편안하니 열매를 맺으려 하지 않고 몸만 키우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과 경작할 때는 가지가 아래쪽을 향하도록 만든다. 위로 올라간 가지는 쳐낸다. 그러다 보면 사과 스스로 제 몸이 위험하다고 느껴서 사과열매를 맺고 당도를 높여서 씨앗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드러낸다. 우리가 흔히 보는 소나무도 똑같다. 키가 크고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에는 솔방울이 없다. 내 몸이 비대해지고 튼튼하다면 번식하려는 의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과가 말을 한다고 했다. 45° 정도 위로 가지를 치켜 올린 녀석들은난 몸을 더 키울 것이니 열매를 맺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추를 달아서 90° 이하로 낮추게 한다. 그리하면난 몸이 힘이 드니까 이제 열매를 맺겠다고 말한다. 밀식재배공법이 나오게 된 것도 이런 작업을 일일이 해야 하니까 그런 방식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사과도 말을 한다. 그 사과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Q.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겠다

당연한 이야기다. 더욱이 이곳이 청정지역 해발 700m 고산지대라서 더욱 자주 나가서 사과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키우는 게 아니니까 더 손이 많이 가야 맛있고 좋은 사과를 내놓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차별화의 근원이다.

Q. 처음부터 사과를 키웠나

사과와 인연을 맺기 전에 맨 처음 키운 것은 비타민 나무였다. 묘목을 파는 업자가 말하길 키우기만 하면 잎과 열매를 사가겠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비타민 나무는 가시가 많아서 이를 제대로 수확하려면 인건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중국 같은 곳은 인건비가 싸니까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막상 수확을 했어도 이를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터라 부득이 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사실 비타민 나무는 가치가 높은 작물인 건 분명했지만 키우는 입장에서는 수요가 없는 작물을 무작정 키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워낙 지대가 높은 터라 사과 경작은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인연이 이어진 셈이다.

Q. 본래 농사 경험이 있었나

시골 출신이라서 농사 짓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삼 형제 중에서 막내인 내가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로 떠나게 된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다만 오랜 시간을 도시에서 생활하고 결국은 다시 돌아온 셈이니 한편으로는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봐도 좋겠다. 우연한 기회에 이곳을 알게 되었고, 고심 끝에 미아리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그 돈으로 이 땅을 구해 사과농사를 짓게 됐다. 내 고향은 경부 군위다. 사과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토양은 이곳에 비해 비옥하지 못 하지만 사과경작의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곳도 있을 정도니 어찌 보면 비록 고향을 떠났음에도 그곳의 기운을 받아 강릉에서 사과를 키우고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Q. 강릉이라고 하면 그저 해변이나 관광지를 떠올리게 되는 데 강릉에서도 굳이 이런 첩첩산중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었나

신문사 일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본래 찾은 곳은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 경관이 좋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다가 최종적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멀쩡하니 잘 지내던 42평짜리 아파트를 처분하고 내려오겠다니까 아내의 반대가 극심했다. 뭐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내 성격이 본래 뭘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결국은 하고야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고집을 부려서 뭔가 하게 되면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아내가 알고 있는 터라 말리지 못 했다. 결국은 나보고 혼자 내려가서 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혼자 내려와 밭을 일구고 집 짓고 정자도 하나 지어놓은 이후에 아내더러 친구들과 구경 오라고 했다. 그게 2006년도의 일이다. 아내가 구경 와서 한 첫 마디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와보니까 괜찮네라고. 마음에 들어 하니까 기쁜 일이긴 한 데도 아내 역시 모든 일들이 서울에 있었기에 다 정리하고 완전히 내려오는 데에는 그로부터 3~4년은 족히 흐른 이후다.

Q. 산골에서 살아가는 데 굳이 좋은 점이라면 무엇인가

어찌 들릴지 모르겠으나 우선 도시의 복잡하고 듣기 싫은 뉴스를 접하지 않으니 그게 좋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만 찾아오고 반가운 사람만 만나니까 좋다. 나 역시 꼭 찾아가야 할 곳에만 들르게 되고 멀리 사는 까닭에 굳이 급한 일이 아니면 부르지 않으니까 마음 편하다. 물론 비용도 적게 드니까 좋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2010년도던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차에 실려서 강릉 시내 병원까지 가는 동안 맥이 끊어졌다. 30분 동안 심폐소생술 끝에 살아났다. 9시간 후에 깨어났더니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뀌었다. 즉 남은 인생 동안 좋은 사과를 만들며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2의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섰다.

Q. 이곳의 사과가 다른 곳에 비해 특별한 자랑거리를 지녔다면 무엇인가

이다시피 이곳은 고랭지라서 사과의 굵기는 다른 곳에 비해 작지만 육질과 당도가 월등하다고 자부한다. 또한 청정지역이라는 장점으로 인해 방제작업을 덜 할 수 있으니까 품질관리 하는 기관에서도 이곳이 사과경작의 최적지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른 작물을 키우던 사람들도 이제는 하나 둘 사과경작으로 업종변경을 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내 경우는 클로렐라 미생물을 이용한 경작을 하기 때문에 해충과 균도 적은 편이다. 사실 사과 밭에 균이 많아서 방제작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작에 따른 폐해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사과만 키운 밭에 유독 균이 많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미생물 경작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옳았다고 본다. 또한 사람 손이 적게 닿으니 자연산에 가까운 사과라고 봐도 좋겠다. 껍질째 먹어도 좋은 사과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Q. 사과 밭에 나가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침 일찍 밭에 나가면 사과들이 다투어 말을 건넨다. 내가 밤새 이만큼 자랐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내가 이건 못 하니까 네가 잘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마치 사람처럼.

Q. 올해로 사과를 키운 지 7년째에 이른다. 무엇이 달라졌다고 보는가

지금까지 조금씩 출하한 사과를 다들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고, 이제 올해부터 본격적인 출하가 시작되는 시기도 됐다. 그래서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다. 언젠가 내가 키운 사과를 맛본 사람이 마치 하와이의 명품 코나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코나의 커피 산지와 비슷한 고도와 안개가 많이 끼는 것도 닮았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사과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싶다. 다만 그 생산량이 넉넉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양에 못 미쳐 아쉽다. 도시의 백화점들도 판매하고 싶어하는데 몇 년 전만 해도 6~7톤 밖에 내지 못 하니까 아쉬워했다. 올해는 이제 4~50톤 정도 수확하게 됐으니 기대해 볼만 하다. 한편 강릉시 사과 영농법인의 회장도 맡고 있어서 같은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Q. 무엇을 키우든 간에 가장 중요한 숙제는 판매와 수익이라고 본다

이곳에 정착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소량 출하에 그쳤던 것이 이제는 본격적인 생산량 수준에 도달했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브랜드화에도 신경 쓰고 있다. ‘바람부리 고산사과라는 브랜드로 출하할 생각이다. 한편 강릉은 늘 고랭지 채소에만 치중했던 게 사실인데, 이제는 대체작물로 사과를 적극적으로 미는 상황이 된 것이 내 스스로도 놀랍다. 강릉에서 이제 사과를 키우겠다고 하면 무조건 시에서 지원하는 예산까지 확보된 상태다. 정말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Q. 올해의 판매 계획은 어떠한가

횡계에서 5일장을 여는 데, 올해는 10여 톤 정도 출하할 것이다. 나머지는 내 스스로 판매해도 모자랄 정도다. 내년에는 4~50톤 정도로 수확량이 늘어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힘에 부치긴 하지만 내년부터는 함께 일할 사람도 뽑아서 보다 과학적이고 제대로 된 방식의 재배와 판매를 진행할 생각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강릉이 지금껏 고랭지 채소에 매달렸다면 이제 대체작물이 사과라고 믿는다. 가능성만 보더라도 미래는 꽤 밝은 편이다. 추석 때는 홍로 300상자 정도가 나올 것이고 그 이후에는 부사가 주종목이다.

Q. 귀농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보는데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나

원주민과의 친화력이 관건이라고 본다. 처음 정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변의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다. 자질구레한 일들이라도 늘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덕분에 정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덜했다. 정작 가족이 일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유독 사위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내심 기대하는 중이다.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나는 사과가 답이라고 믿는다. 내가 사과의 고장에서 자라난 만큼 그 기운을 살려서 이곳 바람부리 마을을 국내 최고의 사과산지로 키워낼 것이다.

전국을 무대로 신문을 배송하던 민병표 대표는 이제 강릉의 산골짜기에 국내에서 최고수준의 사과메카를 스스로 일궈내고 세상의 입맛을 홀릴 준비를 완료한 것으로 보여졌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며 시간의 중요함을 몸으로 깨우친 그이가 이제는 사과를 품에 안고 제2의 인생 서막을 올릴 준비에 바빠 보였다. 그이의 발걸음이 건너편 산꼭대기의 쉼 없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날개처럼.

_박중하, 사진_Jukerman Ba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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